조선왕조계보 - #1. 태조 이성계

조선왕조계보 - #1. 태조 이성계


이성계는 고려 공민왕(1330 ~ 1374) 시기부터 급부상한 신층 무장 세력으로 고려의 중앙 귀족 가문 출신이 아닌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쌍성총관부 지역에서 힘을 키웠던 변방의 세력 중 하나였다.

먼저 쌍성총관부는 원나라가 1258년 고려에 칩입하여 철령 이북의 땅을 차지하고 설치한 통치 기구로 공민왕이 이 지역을 수복하기 전까지 100여 년 동안 원나라의 지배하에 있던 지역으로 이성계의 고조부 이안사가 전주 지역의 향리였으나, 가솔과 함께 쌍성총관부 지역으로 이주함으로서 이안사로부터 이성계의 부친인 이자춘 때까지 원나로부터 천호라는 지방관의 자리를 얻어 지역 고려인과 여진족 위에 군림하는 세력가로 성장한 계기가 된다.




이성계는 중앙 세력이 아닌 변방의 세력이였으며, 고려의 관리도 아니였지만 중국의 원 - 명 교체기의 혼란한 국제 정세를 틈타 고려의 자주성을 뒤찾고자 했던 공민왕의 반원정책으로 인해 쌍성총관부 지역을 고려가 수복할 수 있도록 도왔던 인물이 이성계의 부친인 이자춘이였으며, 당시 20대였던 이성계 또한 부친을 따라 원나라 세력을 몰아내는데 일조하게 되었으며 그로인해 이자춘은 1361년 삭방도만호 겸 병마사로 임명되어 동북면 지방의 실력자로 급부상하게 되며 고려의 관리로 임명하게 된다.


이자춘의 노력으로 고려의 중앙 무대에 명함을 내민 이성계는 자신의 능력에 힘입어 두각을 드러내게 되고 잇따른 외적의 침입으로 무장으로서의 능력을 뽐냄으로서 입지를 굳히게 된다.

1361년 현 평안북도 강계지역인 독로강 박의의 반란을 진압하면서 장수로서의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며, 같은 해 중국에서부터 압록강을 건너 침입해온 10만 명의 혼건적들에 의해 수도 개경이 함락당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성계가 고려인과 여진족 2천여명으로 구성된 자신의 사병을 이끌고 수도 탈환에 참가하여 홍건적 수장을 활도 쏘아 죽이며 개경에 맨 처음 입성하여 탈환하는 업적을  세우게 된다.


또한, 이듬해인 1362년 원나라 장수 나하추의 침입을 물리치고, 1364년 공민왕을 폐하려는 원나라 황제의 명령으로 침입한 덕흥군과 최유의 1만 군대를 최영과 함께 무찔렀으며, 이종사촌이 되는 여진족 삼선, 삼개의 난을 평정하면서 고려 중앙 조정의 탄탄한 입지를 확보함과 동시에 중요 벼슬을 거치게 된다.


하지만 이성계는 변방지역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누대에 걸쳐 뿌리내린 막강 권문세족들이 버티는 고려 중앙 정치 무대에서 그의 성장은 한계가 있었으며, 같은 시기 이성계와 함께 외적을 퇴치하는 데 공을 세운 권문세족 출신의 최영[각주:1]에게는 넘어서기 힘든 벽과 같은 존재였으며 언제나 최영이 다음 자리에 오르게 되는 2인자와 같은 존재로 남아 있게 된다.





이 당시의 국제 정세는 원나라가 북쪽 몽골 지역으로 쫓겨나게 되고 명나라가 중국 본토를 차지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는데 중국 본토를 차지한 명나라는 고려와의 관계에 있어  철령 이북의 땅은 원나라가 고려의 땅을 강제 점거하였던 쌍성총관부 지역으로 명나라는 이곳에 철령위를 세우면서 이전의 원나라 땅이였던 지역은 모두 명나라의 소유라 주장하며 공민왕이 회복한 철령 이북의 땅을 다시 반납하라는 통보를 하게 된다.


우왕[각주:2]과 최영은 이러한 요구에 반발을 하게 되고, 더 나아가 명나라 국초의 불안한 정국을 틈타 요동까지 정벌하고자 나섰으며 이성계는 요동정벌이 불가한 4가지 이유[각주:3]를 들어 의견에 반대를 하게 된다.


이런 의견은 군사에 정통한 장수로서 타탕한 부분도 있으나 우왕과 최영에 의해 무시되었고 이성계는 우왕과 최영의 명을 받아 우군도통사가 되어 좌군도통사인 조민수와 함께 군대를 이끌고 요동정벌길에 오르게 된다.

압록강을 건너기전 위화도에 주둔을 하였으나 큰 비를 만나고 더는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위기에 봉착을 하게 되고 이대로 물에 빠져 죽을 것인가? 군대를 돌릴 것인가의 기로에서 조민수를 설득하여 위화도 회군을 하게 된다.


위화도 회군은 단순히 전진이 어려워 돌리는 것이 아니라 왕명을 거부한 반역자의 신세가 됨을 말하는 것으로 요동정벌을 위해 얻은 대군을 개경으로 끌고 가 쿠데타를 일으키게 된다. 요동정벌대에 군사 대부분을 내 주었던 최영은 적은 숫자로 이성계에게 맞섰지만 역부족이였으며, 이성계는 쿠데타를 성공시킴으로서 최영을 죽이고 우왕을 왕위에서 내쫓고 고려 중앙 정계의 일인자가 되게 된다.





쿠데타에 힘을 실어 준 이들은 공민왕 시기 중앙 정계로 진출하기 시작한 성리학을 신봉하는 신진 사대부들이였다. 신진사대부들은 고려말의 사회적 모순을 고려왕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그안에서 점진적인 개혁을 추진하려하였던 온건파와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급진파로 나뉘에 있었는데 온건파로는 정몽주, 이색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고, 급진파로는 정도전이 대표적이다.


초기에는 신진 사대부 전체가 이성계와 협력하여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각주:4]을 왕위에 앉히는 등 정견을 같이하였지만, 새로운 왕조를 향한 급진파의 급격한 추진력은 결국 두 세력을 반목하게 되고, 이성계는 정도전과 결탁하여 역성혁명을 반대하고 고려에 대한 충성을 주장하던 정몽주를 마지막으로 제거함으로서 역성혁명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이성계는 조준의 건의에 따라 전제 개혁을 단행함으로서 구세력의 경제력을 박탈하고 신진 사대부들의 셩제적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새로운 나라를 향한 새로운 지배계층의 입지를 다지게 된다.

정몽주를 제거하고 4개월이 지난 후에 정도전 등의 추대를 받아 1392년 왕위에 오르게 되며 개경에서 공양왕에게 선위를 받는 형식으로 왕위에 올라 개국하게 되고 이듬해 나라의 이름을 조선으로 바꾸었다.





조선은 3대 기본 정책을 숭유억불[각주:5], 농본주의[각주:6], 사대주의[각주:7]로 정하였으며 이는 이성계가 조선을 세울 때 이념적 바탕을 제공한 신진 사대부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였다.

사대주의적 사고는 오직 어린자가 큰 나라로 작은 나라를 섬기고, 오직 지혜로운 자가 능히 작은 나라로 큰 나라를 섬긴다 란 기본적인 사고로 부터 발인된 내용으로 조선이 유학에서 최고로 치는 어진 자보다는 지혜로운 자라는 두 번째 자리를 택함으로써 중국에 비해 작은 나라인 조선의 안정과 당시 국제 정세 속에서 실리를 추구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이성계가 세운 이 세가지 건국이념은 이후 조선 500년의 정체성을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394년 무학도사의 도움을 받아 한양에 도읍을 정하여 궁궐을 짓고 수도를 이전하였으며, 고려의 본거지인 개경을 벗어남으로써, 고려의 기득권층을 베재하고 새로운 지배계층을 형성하려는 의도가 엿 보인다.

이성계는 유학적인 근본을 바탕으로 한 관제를 개편하였으며 각지의 인재들을 아울러 왕권을 튼튼히 하였으며 경제육전을 편집하여 법치주의에 입각한 국가체제의 정비를 추구하여 조선의 틀을 마련하게 된다.




  1. 최영(1316 ~ 1388) 고려의 명장, 1359년 홍건적이 서경을 함락하자 이방실 등과 함께 이를 물리쳤으며, 1361년에도 홍건적이 창궐하여 개경까지 점령하자 이를 텩퇴하여 전리판서에 올랐다. 1388년 명나라가 철령위를 설치하려하자 요동정벌을 계획하였으나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좌절되었다. [본문으로]
  2. 우왕(1365 ~ 1389) 고려 32대 왕으로 이인임의 유배로 정치적 지지기반을 잃자 강릉에 유배된 후 아들 창왕과 함께 이성계에 의해 살해됨 [본문으로]
  3. 요동정벌이 불가한 4가지 이유 1. 여름철 농번기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부적당하다. 2. 무덥고 비가 많이 오는 시기라 활의 아교가 녹아 무기로 쓰기 힘들다. 3. 요동을 공격하는 사이에 남쪽의 왜구가 침입할 우려가 있다. 4.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는 일은 옳지 않다. [본문으로]
  4. 공양왕(1345 ~ 1394) 고려시대 마지막 임금으로 친명파 이성계에 의해 창왕을 폐위, 공양왕을 즉위시켰으나, 정몽주 중심의 구세력에 이어 이성계에게 실권을 빼앗겼고 폐위당했다. [본문으로]
  5. 유학을 높이고 불교를 누른다란 뜻으로 성리학을 신봉하고 고려시대 불교의 폐단을 비판하였던 신진 사대부들의 경험론이 반영됨 [본문으로]
  6. 중국 송나라에서부터 시작된 성리학 사상으로 주요 경제적 바탕이 된 농업을 국가의 중심 산업으로한다. [본문으로]
  7. 분수를 알아 큰 나라를 모시고 주변과 교린하는 성리학적 사대주의 [본문으로]
04-25 07:02